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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혜숙 생활단식 이야기 (6) 2016-01-28 조회 1,436


오혜숙 생활단식 이야기(6)
 
서울에서 청주로 이사를 올 무렵 딸아이는 초등학교에서 걸 스카우트 대보장이 되었다. 정말 어렵게 확보한 걸스카웃 간부자리였는데발모제 사업으로 불가피하게 청주로 이사를 하면서그 자리를 내 놓을 수밖에 없었다.걸스카웃 간부자리를 대단하게 여겼던 딸아이는 청주로 전학와서는 우울해 하고. 몹시 힘들어했다.
 
그래도 워낙 속이 깊은 아이라 그런지 말없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을 해 갔는데 아들은 또 다시 새로운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려니머리가 짧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들에게 왕따가 되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친구들에게 잘 보이면 왕따를 면할까 싶어서 심지어는집에 있는 돈을 몰래 훔치다가 친구들에게 과자를 사 주고 미니카를 사주면서 인정 받고 그 왕따를 면해 보고자 노력을 다했던 것도 모르고아들을 두들켜 패고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딸아이는 의젓하면서도 자기 역할을 잘 해 나가서 걱정이 안 되었기 때문에 별 관심을 안보이고 누구보다도 나는 아들에게 관심을 쏟아 부으면서도 밤이면 자연건강법을 실천하고 평생교육원을 다니면서 오행침 등 자연요법을 이것저것 공부하게 되었다.그 시절 발모제 사업을 하면서 우리 아이들의 아픔을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그 아이들 마음을 이해한다고는 했어도진정으로 머리카락이 정상이 아니고 다른 애들과 달라서 놀림을 받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모르고 있었다,발모제를 상담하면서 머리카락이 없다는 것은 다리 하나 없는 것과 같은 장애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았다.머리카락이 빠져서 고민하는 사람들을 상담하면서 진정으로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마음으로발모제 사업에 임했던 덕분인지는 몰라도 서울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낮선 땅 청주에 와서 시작한 사업이 순조롭게 잘 진행이 되어 작은 목돈을 쥐게 되었다.
 
그런데 또 다른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머리가 맑아진다는“위즈덤”이라는 제품이 신문광고에 자주 나오기에 대리점 계약을 맺었다. 아무리 내가 그 제품 사용을 해봐도 효과를 알 수가 없었다.내가 취급하는 제품의 효과를 내가 느끼지 못하는데어떻게 내가 내 고객에게 이 제품이 좋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런 효과 없는 제품을 고객에게 판다는 것은 내가 내 자신을용서할 수 없었다. 반품을 하려고 해도 악덕업주 사장은 받아주질 않았다.결국 발모제 대리점을 하면서 어렵게 모은 5천만원의 돈으로새롭게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받았던 제품을 무쏘 승용차에 한차를 싣고 진천 친정집 텃밭으로 가서 위즈덤 5천만원어치를 불살라 버린 것이다.
 
서울서 청주로 이사할 때 단돈 600만원으로 왔는데정말 그야말로 쌈지 같은 돈이 훨훨 타면서 없어지는걸 보고그냥 멍하니 지켜만 보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내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돈도 좋지만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결코 하지 말아야 한다는나의 강인한 의지 때문이었다.
 
청주에서 시작한 발모제 사업은 생각 외로 반응이 좋아서 전국 103개가 되는 대리점에서 5위를 차지하여 시상으로 미국 서부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난 바빠서 가지 못하고 남편이 대신다녀오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공주처럼 자라오던 내가 영업과 판매의 전선에 뛰어 든다는 것은내 자신이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으며 있을 수도 없는 일인데도불구하고 전국 5위의 우수대리점에 뽑힐 수 있었다는 것은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시상으로 나 대신 남편이 미국 서부여행을 떠나던 날은 바로그 당시 임창렬 국무총리가 IMF를 선언하던 날이었다.난 그게 뭔지 몰랐다. 그 잘 팔리던 발모제가 IMF가 선언이 되고 한 달 후부터 판매량이 뚝 떨어졌다.아직 사글세도 못 면하는 어려운 시점인데 정말로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무엇인가 살기 위한 또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서야 했다.
 
그 당시 알도 듣도 못한 생식 대리점을 모집한다는 신문광고가연일 대문짝만하게 5단 통으로 나오는 것이었다.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남편은 서울로 가더니 생식 대리점 계약을 하고초도물량 제품을 들고 집으로 왔다. 낮선 제품이라 10여일이 지나도록방구석에 쳐 박아 놓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10여일쯤 지났을 무렵 도대체 생식이란 게 어떤 것인가 먹어나 봐야겠다고마침내 시식을 하게 되었고, 그 시절에 아.가리쿠스 버섯으로 암을 고친다는 광고의 유혹에 빠져서 본격적으로 생식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그렇게 시작된 생식사업은 그동안 내가 앓고 있던 만성변비와 무력감, 우울증이 좋아지고 체중 13kg을 감량하는 놀라운 효과를 나타냈다. 큰 형부가 나와 함께 생식 다이어트를 시작 하였는데 형부도 8kg 감량을 하면서 고혈압이었던 형부도 혈압조절이 쉬워졌다고 했다.
 
그동안 다단계 제품들을 많이 먹이고 온갖 요법들을 하면서 1억 가까이 썼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머리카락은 겨우 3cm 정도 밖에 길지 않았던 것이 생식을 먹이면서부터 3개월에 1cm씩 머리카락이 길게 자라고 아이들이 뭔지 모르게 활기로 가득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무렵에 연세 60밖에 안되신 시아버님이 갑자기 “폐섬유증”으로 돌아가시는 아픔이 우리 가족에게 있었다.살림 못하는 나를 시아버님이 누구보다도 많이 예뻐해 주셨는데 가족이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이 아픈 일인지 알게 되면서 난 아이들에게 더욱 집착하게 되었다.
 
*본 이야기는 오혜숙 생활단식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 것입니다.앞으로도 오혜숙 생활단식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 이경숙2017-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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