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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혜숙 생활단식 이야기 (5) 2016-01-28 조회 1,037


오혜숙 생활단식 이야기 (5)
 
갖가지 병치레를 하면서 저 자신도 괴로웠던 나머지등에서 잠시라도 안 떨어지던 아이가현미 죽을 먹으면서부터 조금씩 좋아지더니 5살이 되면서특수유치원을 가게 되었다.머리카락이 짧다보니 정상유치원엔 보낼 수가 없기에특수유치원을 보내야만 했던 것이다.
 
하루 종일 아이를 등에 업고 지낸 세월이 어언 5년이 흘렀던 탓에아이가 유치원을 가고나니 등이 허전해 지고 그동안 빡빡하게 지내오면서 여유가 뭔지?사는 것이 무엇인지 의미조차 모르고 살았던 까닭에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물 밀려 오듯이 밀려오는공허감 때문에 정말 죽고만 싶은 마음만 더해져 갔다.
 
그동안 너무나 많이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모든 것에 의미도 없어지고 몸은 늘 아픈 나머지창을 열면 그림처럼 다가와 보이는 불암산과 수락산을 쳐다보면서날마다 눈물짓는 게 일이었다.
 
아들은 특수유치원이라서 그런지선생님들의 지극한 관심과 정성으로 정말 몰라보게 많이 좋아지면서잘 뛰어 놀고 천식 외에는 그렇게도 아파하던 몸 상태까지많이 좋아지고 건강은 날이 갈수록 좋아졌다.
 
딸은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도 뛰어난 재능과 특유의 영리함으로 잘 자랐고틈틈이 생활일기를 써오더니 전국 초등생 대상 일기 공모에 응모하여내무부장관상도 타고, 걸 스카우트에 가입하여 리드자의 역할도 하는 등학교생활에 잘 적응해 나갔다.물론 공부는 늘 전교 수석을 놓치지 않았다.
 
아이들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이 되나 싶더니이제는 그동안 몸 고생 마음 고생해 오던 것이 영향을 미쳤는지내 자신이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신우신염이라는 병이 오게 되었고마침내 나는 이때부터 병원을 달고 살아가야만 했다.
 
그 무렵, 남편은 정부투자기관을 다녔었는데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와서 사업을 한다고 하더니기술과 경험이 없는 사람이 나와서 무슨 일을 하겠는가? 직장인들이 직장을 집어 치우고 나와서 쉽게 덤벼드는 사업이
 
음식점이 아니던가? 남편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마침내 남편은 그 당시 유행하던“하이트광장”을 오픈하게 되었고, 경험 없이 시작한 사업은결국 실패로 끝나면서 남편이 직장생활 하면서 겨우 어렵게 마련했던주택조합 아파트 한 채를 날리면서 사업을 접어야 했다.
 
사업을 정리하고 나니 남는 돈은 달랑 600만원이 전부였는데정말 이 돈 가지고는 오갈 데가 없었다.그 당시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서 근무하던 서 모 박사가 개발한 발모제가뉴스와 신문에 대서특필로 기사가 나면서 그 발모제 대리점에 참여하고자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발모제 본사 사장님을 찾아가서우리 애들의 머리카락 문제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을 했더니대리점을 내어 준다고 하는데 서울에는 벌써 다 나가고자리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개설되지 않은 지역을 찾다보니청주에 대리점을 개설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리게 되었고아무도 없는 낮선 땅 청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발모제 대리점 개설을 하면 애들 문제도, 살아가는 문제도어느 정도 해결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 하나로 이삿짐을 싸서아무런 연고도 없는 청주 땅으로 오게 되었다.
 
보증금 600만원에 월세 40만원씩을 내야 하는아주 낡은 아파트로 이사를 와서 짐을 풀고사무실 하나 얻을 돈이 없다보니 형부가 소유하고 있는건물 한 모서리에 3평정도 되는 공간을 내 주어서달랑 전화기 한 대를 놓고 전화가 오면 상담해서발모제를 배달해 주는 것으로 대리점 사업을 개시하게 되었다.
 
그 당시 발모제 사업 대리점을 맡아서 청주로 내려오게 되면서전에 배웠던 자연건강법에 마침내 다시 입문하게 되었다.그때 만났던 분이 “한국자연건강회” 에 이영규회장님이다.
 
 
*본 내용은 오혜숙 생활단식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 것입니다.오혜숙생활단식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